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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4호]<전문가칼럼> 성인지적 관점과 성평등한 캠퍼스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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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적 관점과 성평등한 캠퍼스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 노정민 대표

 

 

  올해 초 유명한 정치인이 업무상 만난 비서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법원의 판결이 엇갈리다가 얼마 전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판결이 내려졌을 때, 20년 남짓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 하고 있는 나에게 정말 많은사람들이 성인지 감수성이 대체 무엇이기에 없다던 죄가 있는 것으로 뒤집히나요?” 라고 물었다.

 

  2018년 봄, 대법원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행위를 한 것을 이유로 해임된 대학교수가 교원 소청 심사 청구를 기각한 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사건에서, 학생 피해자들이 성희롱 피해 사건 이후에도 계속하여 원고의 강의를 수강한 점, 피해 진술에 소극적인 점, 사건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문제를 제기한 점 등을 이유로 피해자 진술이 진실되지 않다고 배척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였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으며, 신고한 후에도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이 믿을 수 없다고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최근 법원의 기준이다. 정리하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직 합의된 정의는 없으나, 대체로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판례상 성폭력 범죄사건 등을 심리할 때 피해자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지 감수성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상황의 불평등·불균형·불합리 등의 차별적 요소를 일상생활 속에서 민감하게 인지하는 것으로 정리가 된다.

 

  대학 캠퍼스는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장이라고 하지만 10대 후반부터 60대 중반의 연령대가 분포한 대학의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생활의 장 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 즉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2018년 교육부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을 통해 살펴본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1) 의 결과에 따르면,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1.98건이고,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벌어진 성희롱·성폭력 건수가 0.56건으로 나타나 학생들 사이에서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었지만, 전체 대학생 및 대학원생 수는 3437309명인 반면 교수 수는 9902명으로 학생 수가 38배 정도 많기 때문에 학생과 교수 수를 고려하면 학생과 교수 간에 일어나는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였다.

 

  #MeToo로 촉발된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 공론화를 통해 알려지는 교수-학생 간 성희롱·성폭력을 이야기할 때 위계에 의한또는 권력형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고 있는데, 이러한 조어가 자주 쓰이게 되는 배경에는 조건형(quid pro quo)’이라든가 업무상 위력과 같은 정책적·법률적 표현을 훌쩍 뛰어넘어 성희롱·성폭력 문제의 핵심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성희롱·성폭력은 그 자체가 젠더의 불균형한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문제이지만, 대학 캠퍼스에서의 그것은 집단이나 조직에 상존하는 위계적 질서와 지위 격차에 따른 권력의 불균형 상태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조건형이 이익 또는 불이익을 상대방에게 부과할 수 있는 지위와 연관되듯이, ‘업무상 위력은 굳이 폭행이나 협박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가령 대학 캠퍼스에서 교수-학생 간에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의 피해자는 지위의 격차에 따른 권력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조건형 괴롭힘의 상태에 놓이게 되어 이것 아니면 저것(quid pro quo, this or that)의 막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교수의 성희롱·성폭력은 피해자가 즉각 그 행동의 의미를 인지하여 동의 또는 거부를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행동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강도가 높아지기 쉽다. 게다가 교수-학생의 관계는 학점, 논문지도, 추천서 써주기, 나아가 진로와 고용기회를 좌우할 수 있다. 이 점에서는 학부생보다 오히려 대학원생이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될 수 있다. 교수-학생 관계의 특성상 위력이 작용하고, 피해자가 어느 쪽을 택하건 좋은 선택이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며, 이 같은 일이 특정 성별의 학생들에게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불평등한 현실에 일조하는 등 대학공동체의 성평등에 역행한다.

 

  교수-학생 간의 성희롱·성폭력은 대학 교원의 지위 획득 및 상실에 관여하는 법적 절차가 많고 까다로워 오히려 피해자가 보호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이른바 권력형 성희롱·성폭력에 해당하는 교수-학생 사건은 사전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예방 교육에 대한 부정적 정서와 저항이 심한 것도 교수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따라서 대학에서 실시되고 있는 교수 대상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의 내실화가 절실하다. 교원은 행위자가 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예방은 물론, 사건 발생 시 그들을 지도해야 하는 최일선의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대학공동체는 학생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침해되는 위계에 의한 성희롱·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학내 성희롱·성폭력 고충 처리 기구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며, 인지적 관점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심의와 징계의 공정성을 공고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평등한 캠퍼스, 즉 대학은 청년들이 사회진출을 앞두고 머무는 마지막 교육기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1)교육부·한국여성정책연구원(2018).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 2018년 교육부 정책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