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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69호] 우리에겐 여성혐오 없는 게임이 필요합니다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19-05-28
  • 조회502




우리에겐 여성혐오 없는 게임이 필요합니다



페이머즈 (페미니스트 게이머 연합)


여성들이 여성혐오 경험 없이 게임을 즐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쉽게 즐기는 모바일 게임에서부터, ‘오버워치’,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나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같은 대중적인 PC 온라인 게임, 나아가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스위치 같은 콘솔 게임까지. 이 모든 장르의 게임에서 여성혐오는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 게이머를 억압한다. 온라인 게임 내에서 여성 게이머, 혹은 여성으로 추측되는 게이머를 대상으로 ‘남성 게이머가 가하는 성희롱 등의 성차별적 언어폭력이 여전히 심각하다. 이와 관련한 사례는 페이머즈가 트위터에서 운영하는 ‘게임계 내 여성혐오 고발계정’(이하 게계여고)에서 제보받은 사례 중 ‘오버워치’에서 그 비중이 두드러진다. 





사례를 살펴보면 여성 게이머들은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게이머로부터 게임에서 지게 될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씨발년, 좆같은 년’이라는 원색적인 욕설부터,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까지 듣는다. 더불어 ‘힐러’와 같은 지원가 역할을 선택하는 사람은 무조건 ‘여성’일 거라는 편견을 만들어내 여성 게이머들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가상의 ‘여성’을 상정하여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여성혐오 스포츠를 즐긴다. 2018년부터 ‘롤’ 커뮤니티에서는 ‘혜지’라는 단어로 여성 게이머를 비하하는 것이 유행 중이다. 여기서 ‘혜지’란, ‘예쁜 외형의, 수동적인 지원가 역할만 하는 가상의 여성’을 뜻하는데, 최근에는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었다. 어떤 이가 수동적인 지원가 역할 캐릭터만 선택한다면 그가 여자든 남자든 ‘혜지’라 부른다. 여기서 ‘혜지’는 ‘여왕벌(현실에서의 꽃뱀과 유사한 의미)’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인 것이다. 언제나 ‘놈’보다는 ‘년’이 보다 더 큰 비하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혜지’라는 여성혐오적인 멸칭을 사용하여 여성 게이머를 철저히 배제하고 무시한다.


여성 게이머가 게임을 하며 겪는 여성혐오는 여성 게이머가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 매체 자체에서 생산하는 여성혐오를 맞닥뜨려야 하는 경우 역시 여성 게이머의 일상에 늘 자리한다. 게임 내에서 여성이 성적 대상화 되는 양상은 스퀘어 에닉스에서 개발한 MMORPG 게임 ‘파이널판타지 14’(이하 파판14)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 사진은 파판14의 5.0 확장팩 칠흑의 반역자들에 새로 추가되는 플레이 가능 종족 ‘비에라’의 사진이다. 이 종족은 모계사회이기에 종족 내 성비가 여성이 대다수라는 설정이며, 종족의 구성원들은 전부 토끼 수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이 종족은 누가 봐도 바니걸과 란제리 룩을 연상시키는 ‘천 조각’을 걸치고 있으며, 아주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있다. 이 천 조각은 당연하게도 옷의 기능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슴과 둔부를 성적 대상으로 욕망화 하는 것을 돕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 게임에서 가슴과 둔부를 비롯한 여성의 신체부위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때 필요한 기능을 해주는 신체기관이 아니다. 오직 남성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다음 사진은 라이엇 게임즈의 MOBA 게임 ‘롤’의 의료인 코스튬이다. 남성 캐릭터의 경우 현실적으로 의료진이 입을 법한 수술복을 착용한 모습이다. 반면, 여성 캐릭터의 경우에는 가슴과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나며, 몸선 역시 적나라하게 부각되는 의상을 입고 있다. 현실의 간호사들이 입는 복식이 아닌, 이와 같이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의상들은 특정 직업군에 대한 성상품화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아이온’과 ‘테라’ 등의 국내 MMORPG 역시 상황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하다. 이 게임들의 여성 캐릭터 중에서 미형의 얼굴, 날씬하지만 일명 ‘콜라병’ 몸매가 아닌 캐릭터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그들이 입고 있는 의상들은, 하나같이 전부 가슴과 둔부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것 마냥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다. 







한때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있다고 호평을 받기도 했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FPS 게임 ‘오버워치’ 역시 이러한 비판점에선 예외가 아니다. 남성 캐릭터들의 생김새는 가지각색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 반면, 여성 캐릭터는 피부 색깔을 제외하고는 사실 같은 사람이라 해도 될 정도로 비슷한 형태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달걀형의 얼굴, 아몬드형의 커다란 눈, 오뚝한 코, 작은 입술까지, 노년 여성 캐릭터인 ‘아나’조차 이 전형적인 미인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여성 캐릭터는 외모부터 의상까지 철저하게 제한당한다. 여성 게이머는 캐릭터가 본인과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성적대상화 되고, ‘미형’의 외모로 도식화되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게임 내의 여성혐오는 남성 기득권들에 의해 생산되고 또다시 학습되어 현실의 여성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온다.


유희문화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게임계 그 어느 곳에서도 여성은 '인간'이 아니다. 오직 여성혐오의 표적이자 타자화의 대상일 뿐이다. 여자임을 드러내고 게임을 하게 되면 높은 확률로 인권을 유린당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었다. 특히 한국의 게임산업에서 반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정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부 고용주들은 여성 게임업계 노동자들이 개인 SNS 계정에 페미니즘과 관련한 글을 게시하거나, 그에 동조하는지까지 살펴보는 등 사상검증까지 자행하며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에  반발하는 여성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기도 한다. 


이 상황 속에서 여성 게이머들에게는 여성혐오 없는, 성평등하고도 재미있는 게임과 게임문화가 절실하다. 성평등하고 재미있는 게임이 시장에 나오려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여성혐오적인 게임의 개발의 규제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처벌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장치가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한다는 소리이다. 현재의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분류기준으로는 성매매와 같은 성착취를 암시하는 등 여성혐오적인 요소로 점철된 ‘왕이 되는 자’의 광고조차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다. 실제로 이 광고는 규제되었으나, ‘허위 광고’라는 점에서 규제되었을 뿐, 여성혐오적인 내용은 제재 사유에서 단 한줄도 찾아볼 수 없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분류기준과 규제 및 처벌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여성혐오적인 게임의 개발과 제작을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포장하는 것 역시 그만두어야 한다.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절대로 창작의 자유로 인정해서는 안된다. 한 인간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유희로 즐길 수 있는 창작 소재가 아니다. 이처럼 여성혐오적인 게임의 개발을 저지한다면, 보다 성평등한 게임들이 시장에 출시될 것이고, 이는 여성혐오 생산-소비-재생산의 굴레를 타파하는 한 걸음이 될 것이다. 게임 내에서 여성이 당하는 성희롱과 같은 여성혐오적 언어폭력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법안과 규제 역시 필요하다. 여성 게이머들이 아무리 게임사에 언어폭력을 가한 게이머들을 신고하고 고발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사측에서 가해자에게 강경한 대응조치를 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제재가 이루어지는지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사측에서 적극적으로 언어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그러한 가이드라인을 사회적으로 제작하는 방향으로 게이머 간의 여성혐오 재생산과 답습을 무너뜨리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장치뿐만 아니라, 게임업계에 ‘여성’ 소비자로서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는 것도 꼭 필요하다. 아직까지 여성혐오적이고, 여성배제적인 게임들은  무수히 많고, 게임문화는 남성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속에서 지속적으로 여성 게이머를 가시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게임 시장에 존재하는 성평등한 게임을 소비하고 즐기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여성 주연 게임에 대해 여성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양상을 보이자 다양한 여성 서사 게임들이 해외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 2012년 발매되어 명작으로 손꼽히는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부터, 게릴라 게임즈의 ‘호라이즌 제로 던’,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 오딧세이’까지, 여성 캐릭터를 남성의 성적대상이나 포르노적 도구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대우하는 게임들이 지속적으로 흥행하고 있다. 한국시장에서도 여성 개발자가 개발하고, 여성혐오적이지 않은 ‘2048 뮤그’, ‘살아남은 X의 행성’, ‘호텔 소울즈’와 같은 다양한 게임들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 


게임업계와 게임문화를 비롯한 게임계에서 여성 게이머는 드넓은 해변가의 작은 모래 알갱이들처럼 영향력 없는 미미한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성혐오적인 요소에 불쾌감을 느끼는 여성 게이머들이 하나둘 모여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단순한 모래 알갱이의 집합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여성혐오를 막아내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고, 다른 모래 알갱이들이 쓸려나가지 않도록 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여성 게이머가 성평등한 게임뿐만 아니라 성평등한 게임계를 이룩할 수 있는 첫 발걸음이다.



*모든 그림의 출처는 게임 계 내 여성혐오 고발계정 https://twitter.com/famerz_GGYG 입니다. 위 사례들처럼 여성의 신체를 성적대상화하고, 외모를 ‘미형’으로만 제한하는 양상은 게계여고에서 진행 중인 ‘#금주의_게임계_핑크택스’ 고발 프로젝트 (https://twitter.com/i/moments/1100640800638066689?s=13)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