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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69호] ‘좋은 남성’이고 싶은 그대에게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19-05-28
  • 조회316




‘좋은 남성’이고 싶은 그대에게



이세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 대외홍보팀)




‘엄마 몰카’를 유튜브에 올리는 초등 남학생, “느금마”, “엠창” “게이 새끼” 등 혐오표현이 “꿀잼”이라는 남학생들…. 요즘 한국 10대 남성들 간 혐오·차별 ‘놀이’ 문화는 충격적입니다.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문화를 받아들여 퍼뜨리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우려를 자아냅니다(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조사’, 2017). 


20대 남성들이 일으키는 ‘반페미니즘’ 물결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지금 한국의 20대 남성은 ‘공정성을 해치는’ 페미니즘에 반대한다. 이들은 남성의 업무 능력, 성취동기 등이 여성보다 뛰어나므로 남녀임금격차가 정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남성이 저지른) 젠더폭력에 대한 사법 절차나 현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은 불공정하고 엉망진창이라며 반대한다.” <시사IN>이 지난달 20대 남자 특집 보도에서 내놓은 분석입니다. 



(flickr)


인권감수성 낮은 젊은 남성들

사회 문제로 떠올라

“남성은 폭력 주요 가해자이자

결백하다 하기 어려운 방관자“



젊은 남성들의 낮은 인권감수성,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미국 남성 대학생 12명 중 1명은 법적으로 강간에 준하는 가해를 저지른 적 있었다. 그러나 가해자 중 88%는 자신의 행위가 강간이 아니라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성폭행이 얼마나 사회에 만연해 있으며, 그런 상황을 못 본 척하고 넘어가는 ‘보통’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드러내는 사례다.” 미국 반성폭력 활동가 잭슨 카츠의 책 『마초 패러독스』(갈마바람, 2017)의 한 대목입니다. 


카츠가 제시한 ‘보통 남자들’의 면면을 봅니다. 내키지 않는데도 동료의 권유에 성구매를 하러 가는 남자들, ‘다들 하니까 나도’ 집단 성폭력에 가담하는 남자들....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기자 단톡방 성폭력’, ‘교대 남학생 카톡방 성폭력’에서처럼, 명백한 성폭력을 방관하거나 적극 동조하는 남성들, 불법촬영을 저지르고도 ‘호기심에 그랬을 뿐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는 없었다’라고 하는 남성들.... 기사화된 사례만 모아 봐도, 이런 ‘보통 남자들’의 대열은 끝없이 길어집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국가와 인종을 불문하고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입니다. 국내외 주요 통계 지표들이 가리키는 현실입니다. “남성들은 성폭력의 주된 가해자이며, 결백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방관자다. 설사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남자라 할지라도, 폭력은 남자들의 인생에서 제각기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해 남성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이 아니라 우리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살고 있는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카츠의 지적입니다. 



남성이 폭력에 둔감한 건

전통적인 ‘해로운 남성성’ 탓

강한 척 내면 숨기는 남성들

강간 않고 육아 도우면 ‘좋은 남성’일까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폭력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남성의 문제”라며 성찰과 변화를 촉구해왔습니다. 남성들 사이에서는 강한 척하느라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범죄임을 알면서도 남성들 간 유대를 형성하려고 여성을 착취하는 ‘해로운 남성성’이 문제라는 인식이 점점 더 퍼지고 있습니다. “한국 20대 남성들은 이제 ‘강하고, 성공한, 위계질서에 복종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거부하는 성향이 뚜렷하다”는 최신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 


그러나 ‘성폭력’ 말만 나와도 자신을 비판한다고 생각해 방어적·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남성들이 아직 많습니다. 성차별·성폭력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남성들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깎아내리고, ‘동성애자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남성들도 적지 않습니다. 






남성 지지 없인 성폭력 근절 못해

히포시·하얀리본 등 

남성의 참여 독려 운동 이어져




(heforshe.org)



어쨌거나 인류의 절반인 남성의 지지 없이는 성폭력을 근절할 수 없습니다. 남성들의 인식을 바꾸고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시도가 전 세계에서 이어지는 까닭입니다. 2014년 UN Women이 시작한 ‘히포시(HeForShe)’ 캠페인이 대표적입니다. 남성들에게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참여하라고 촉구하는 글로벌 캠페인인데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영국의 해리 윈저 왕자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조지프 고든 레빗, 러셀 크로, 톰 히들스턴, 사이먼 펙 등도 참여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하얀 리본 운동’도 유명하죠. 1989년 몬트리올에서 한 남성이 대학 강의실에 침입해 여성만 골라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한 캐나다 남성 단체가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도, 침묵하거나 방관하지도 말자’며 시작한 리본 달기 운동입니다. 



(dcp.wa.gov.au)


1993년 도입돼 오늘날 미국 대학과 군대 내 스포츠 성폭력 예방교육에 가장 널리 활용되는 교육 모델인 ‘MVP(Mentors in Violence Prevention, 폭력 예방 멘토)’ 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합니다. MVP 프로그램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맞서고 피해자를 지지할 능력이 있는 방관자로 봅니다. 남성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가까운 여성(또는 남성)이 폭력을 겪는 모습을 상상한 후, 또 다른 남성이 이를 방관하는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또 여러 폭력 사건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자신들이 이전, 도중, 이후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다각도로 검토하는 훈련 등을 거칩니다. 이를 통해 남성들은 폭력의 상황에서 무력감, 슬픔 등 ‘남자답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게 괜찮고 당연하다는 점을 깨닫고, 폭력적 남성성과 침묵·방관에 대해 논의할 수 있습니다. 최종 목표는 “가해 남성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보는 남성 또래 문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1993년 출범한 스웨덴 비영리 페미니스트 단체 ‘멘(MAN)’도 주목할 만합니다. “남성의 폭력 근절을 위해 남성성에 대한 유해한 편견과 인식의 변화를 목표로 하며, 폭력 없는 평등한 세계”를 만들고자, 일종의 ‘남성 아웃리치’ 활동, 토크쇼, 대중 교육 등을 벌이는 단체입니다. 



(http://mvpscotland.org.uk)



(https://mfj.se)



‘남성의 적극적 참여’가 열쇠

스포츠 스타 등 ‘성공한 남성’ 내세워

반성폭력 메시지 전하면 효과 ↑

고위직 남성의 노력·공정한 사법처리 중요

남성 책임 은폐하는 언어도 바꿔야



결국 ‘남성의 적극적인 참여’가 열쇠입니다. “여성을 깎아내리는 데 익숙한 남성문화 속에서 자라난 남성들은 여성 교육자·활동가들에게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럴 때 남성이 나서서 이야기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남성 반성폭력 활동가들은 말합니다. 


‘성공한 남성’, 스포츠 스타처럼 ‘남성성의 상징’으로 꼽히는 남성들을 내세워 반성폭력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멘(MAN)은 스웨덴 남성들에게 인기 있는 남성 래퍼·영화배우·운동선수 등이 직접 반성폭력 메시지를 전하는 뮤직비디오와 인터뷰 영상을 만들어 호응을 얻었습니다. MVP 프로그램 역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주목받는 인기 남성 선수들을 내세워 성폭력, 폭행, 성소수자 괴롭힘 등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2005년 미국 메인대학교에서는 ‘폭력에 반대하는 남자 운동선수들(Male Athletes Against Violence)’이라는 단체가 인기 미식축구 선수들을 내세운 포스터에 “동참하세요. 함께 폭력을 뿌리 뽑읍시다”라는 구호를 넣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비난보다 긍정적인 자극을 통해 동기 부여하기” 전략입니다. 


관리직에 오른 남성들도 성폭력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학교나 기업, 정부 기관 등에서 남성 관리자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관리자 채용 단계에서부터 성인지 감수성을 지닌 후보들을 우대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공정한 사법 처리도 중요합니다.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성들이 법적 책임을 면하기 힘들어지면, 죄에 따른 부정적 결과를 예견하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할 확률도 줄어들 테니까요. 


‘언어의 전환’도 중요합니다. 카츠는 “성폭력을 일컫는 현재의 언어가 어떤 식으로 남성의 책임을 묵과하고 낡은 인식 체계에 갇혀 있도록 만드는지” 알리자고 제안합니다. 그는 이러한 “성 중립적 언어가 가해 남성이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느끼기 어렵게 만들고, 따라서 남성들이 성폭력 책임에서 교묘히 벗어나도록 만든다”고 비판합니다. 



‘남자다움’ 강요하는 사회 전반 바꿔야

“손가락질보다 대화...같은 남성의 책무”

“나를 높이려 남 비하하지 않는

‘진정한 남성성’ 찾길”



젊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보노라면 변화는 멀어 보이지만, 긍정적인 지표들도 있습니다. 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투 운동(44.9% 지지), 낙태죄 폐지(46.9%지지) 등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을 갖고 지지하는 20대 남성도 적지 않습니다. 20대 남성 4명 중 1명은 성평등을 위해 남성의 참여를 촉구하는 UN ‘HeForShe’ 캠페인·화이트리본 캠페인 등 성평등 캠페인과 페미니즘 교육에도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청년 남성에게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제도, 시스템, 문화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희생과 전통적 남성성을 강요하는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여성을 보호하는 강하고 씩씩한 남자되기’를 권하는 교육과정과 상급자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직장 문화 개선”을 제안했습니다. 


5년째 스웨덴 남성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캠페인을 펼쳐온 아마디안 씨는 “(남성들이) 무지하다며 손가락질하기보다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 그게 같은 남성으로서의 책무”라고 강조합니다. “남자의 잘못된 태도와 행동이 폭력의 주요 원인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남자들이 늘었습니다. 남자들은 ‘남성 혐오’라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여성 페미니스트들에 비해) 적으므로 ‘불편한 진실’을 좀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죠. 앞으로 더 많은 남자가 공개적으로 ‘남성성’과 폭력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면 성폭력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도 보다 솔직한 담론이 오갈 겁니다.”


“결국 페미니즘은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운동임을 알아야 한다”고 카츠는 말합니다. 남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면 무엇이 좋냐고요? “남자들에게 성차별과 여성 학대를 거부하라고 요청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서 뭔가를 빼앗아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매우 소중한 어떤 것, 즉 자기 자신을 높이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남성성의 시각을 선사하는 것이다. (...) 그런 행동은 그를 더 나은 남자가 아니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