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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69호] 기자 단톡방, ‘여성혐오’ 소라넷과 같았다

  • 작성자진흥원
  • 작성일2019-05-28
  • 조회1833


기자 단톡방, ‘여성혐오’ 소라넷과 같았다




기자 단톡방, ‘여성혐오’ 소라넷과 같았다


손가영 미디어오늘 기자



처음 소라넷을 보고 경악을 했을 때가 2015년이다. 여성 커뮤니티에서 ‘골뱅이’를 알게 돼 확인차 들어간 곳에서 혐오감에 몸을 떨었다. 한국 남성문화의 타락을 제대로 모르고 살아온 것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곳에서 성범죄는 놀이였고 여성은 놀잇감이었다.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집단, 이를 방관해 준 집단과 공존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최근 같은 고민이 든 건 기자 사회의 소라넷을 눈으로 보고서다. 논란이 된 ‘기자 단톡방’은 소라넷을 빼닮았다. 익명 커뮤니티를 만들어 놓고 성범죄를 놀이로, 여성을 성적 수단으로 죄책감 없이 가지고 놀았다. 잡담·사진 등의 수위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문화였다. 기자들은 직업의식을 두고 ‘정론을 지향한다’고 대외적으로 말한다. 그래서 질문이 남았다. ‘그렇다면 우리 기자들은 단톡방에서 즐겁게 떠든 기자들과 함께할 수 있나?’


언론계 반응은 미온적이다. 논란 초기 권위 있는 한 기자 단체에 입장 발표 계획을 물었더니 고민도 관심도 없어 놀란 기억이 있다. 비난 여론이 과열됐다는 기자도 적지 않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익명 카톡방이라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데다 일부의 사적인 일탈”이라는 것이다. 단톡방엔 여자 기자도 있었으니 ‘남성 문화’라 부르는 게 불편하다는 솔직한 답도 있었다. 


눈 가리고 아웅으로 들린다. 취재 중 눈으로 확인한 1년 반가량의 카톡 기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혐오적이었다. 보도로 노출된 카톡 기록은 전체 8500여개 대화 중 1%도 안 된다. 가장 심한 사례만 취사 선택돼 공개됐다. 나머지 99%는 그 1%를 향한 환호성이다. 


2017년 1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공유된 사진은 590여장, 포르노·불법촬영물 유포 사이트 링크는 140여개다. 논란으로 방이 폐쇄되기 직전까지 여성의 헐벗은 사진이 올라왔다. 8500개 대화 중 상당수는 유흥업소와 즉석만남 후기 공유와 반응들이다. 참가자 2명이 주로 만난 여성과 함께 찍거나 몰래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잠자리 상황까지 중계했다. “이 X 코 곤다”거나 “곧 신발 컷 올릴 듯” 등이다. 둘 다 자신이 유부남이라 밝혔다.


“인증샷 인증샷!” 따위 답만 달렸다. 인증샷을 요구하던 한 참가자는 ‘다음엔 성관계 사진을 올려달라’ 투정 부리기도 했다. 여성을 맛에 비유한 성희롱은 예사고 “저 정도면 육덕 아니에요?” “견적 안 나오네” “노콘 얼싸” 등의 낯뜨거운 반응만 줄이었다. 어린 여성을 만난 참가자는 자랑까지 했다. “저 19살 모델하고 요즘 연락 중이에요”라거나 “낮 4시에 다녀왔어요. 20살입니다” “저 방금 98년생이랑 마셨어요”라는 식이다. 이들은 스승 대접을 받았다. 


불법 유포 촬영물, 성매매 후기 공유, 성폭력 피해자 2차 가해, 미투 운동 조롱 등은 지난 한 달간 여러 보도로 확인됐다. 불법 유포 촬영물은 최근 1건이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지라시 형태로 무차별 유포된 ‘골프장 성관계 영상’이다. 논란 당시 피해자들이 최초 유포자를 경찰에 고소할 때, 기자 단톡방에선 영상 2개가 공유되자마자 누군가 피해 여성 사진과 이력을 구해왔다. 


구성원 모두가 언론인이 아닐 가능성은 있다. 블라인드 앱 계정을 가지고 있는 퇴직 기자, 친구 계정을 빌려 쓴 비언론인, 경영직군 등 비편집국 직원이나 단톡방 링크와 비밀번호를 입수해 참여한 비언론인 등이다. 사이버성범죄 단톡방은 200명 규모의 ‘언론인 정보공유 카톡방’에서 따로 파생됐다. 정보방에 있던 한 기자는 “모두가 언론인은 아니겠지만 대다수가 언론인이라는 건 그 방에 있는 누구나 동의할 합리적 가정”이라며 “이 사건 실체는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성범죄 단톡방에 적극 참여한 인원은 20여명, 총 인원은 30~100여명으로 꾸준히 바뀌었다. 현재 이 단톡방부터 모체인 정보방 3개 모두 폐쇄되면서 20여명 흔적도 끊겼다. 사건을 최초 고발한 단체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은 이들을 찾아내 책임을 묻기 위해 지난 10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수사는 진행 중이다. 


불신은 말과 행동이 모순될 때 생긴다. 언론인들이 대외적으로 밝히는 가치와 정반대의 실상이 확인된 지금, 언론계 스스로의 성찰 과정이 없다면 시민들 언론 불신은 더 심해질지 모른다. ‘실체적 진실이 없다’고 방어하기보단 자성이 먼저이지 않을까. 당장 온라인 커뮤니티엔 “뒤에서 저러고 있으니 여성혐오 보도가 양산되지”란 비난이 무성하다. 이 불신감이 이후 언론계에 어떤 화살로 돌아올지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