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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68호] 그녀들이 자유롭게 날아오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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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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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녀들이 자유롭게 날아오르려



박다해 한겨레 기자



새까맣게 타버린 화재 현장에서 누군가 살고 있었단 흔적을 말해주는 건 참사를 채 피할 수조차 없던 성매매 피해여성을 응원하는 노란색 쪽지들뿐이었다. “바람이 되어 훨훨 날아가소서.”, “이제는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자유롭게 해보기를 바라요. 그리고 다음 생에서는 꼭 행복하기로 해요.”, “좋은 곳에서 편히 쉬다가 다시 태어나거든 예쁜 사랑만 받으며 살아가기를 기도할게요.”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집결지를 찾은 건 추위가 매섭던 올해 1월 초였다. 추모 미사를 지내고도 며칠이 지난 뒤였다. 골목은 어둡고 조용했다. 최근의 화재사고 때문인지 문을 연 ‘유리방’은 두세 곳 밖에 없었다. 빛이 새어나오는 유리방을 향해 한 남성이 재게 발걸음을 놀리는 모습이 보였다. 재개발 예정구역임을 알리며 ‘천호2조합 이주개시’가 적힌 현수막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이주 시한을 한참 넘기고도 계속 돼 온 영업 실태를 두고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철거가 코앞인데도 업주들은 자신들의 영업권을 행사하며 더 많은 이주비를 받기 위해 여성들을 볼모로 삼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엔 성북구 하월곡동의 성매매집결지,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로 불리는 곳을 찾았다. 거대한 주상복합건물 바로 옆에 남아있는 집결지는 거대한 도시 안에 홀로 동떨어져 있는 섬 같았다. 한 사람이 채 지나가기도 어려운 골목골목마다 전선이 어지럽게 얽혀있었다. 천호동처럼, 이곳도 화재가 덮친 적이 있다. 2005년 화재가 발생해 성매매여성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소방점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불법개조가 만연한 것도 성매매집결지의 공통점이다. 화재가 발생한 천호동 업소는 2층짜리 건물에 6개의 방을 만들고 탈출할 수 있는 창문이나 비상구조차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미아리의 방들은 지하를 파고들었다고 했다. 좁은 면적에 밀집된 쪽방, 이윤을 착취하기 위한 ‘최적의 구조’ 안에서 성매매 피해여성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숨구멍조차 없다. 


최근 불거진 가수 승리의 성매매 알선 혐의나 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관계가 보도 되는 걸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던 건 성매매를 단지 관행으로 여기며 수요를 차단하는 정책을 제대로 집행해오지 않았던 오랜 역사 때문이다. 이하영 여성인권센터 ‘보다’ 소장은 “현장단체에서 성매매업소 업주를 고소?고발하면 경찰은 증거가 없다며 조사를 미온적으로 하거나 현장단체의 문제제기에 수사 후 기소의견으로 올려도 검찰에서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린다”고 지적했다. 설사 성구매자가 성매매 사실을 인정해 처벌이 된다고 해도 ‘존스쿨’(성구매 초범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 교육수강을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다. 


이종희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 집’ 소장은 지난 1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성매매 집결지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긴급현안토론회에서 성매매집결지 폐쇄과정이 개발 이익에만 의존하고 이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재가 발생한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2구역은 애초 지난해 3월 이주가 예정돼있었으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계속 미뤄졌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2구역 내 성매매업소들은 여성들을 이용하여 이주보상비를 더 받기 위해 버티고 있었고 이 와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보상비를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성매매여성의 인권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고 짚었다. 


결국 성매매 수요를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공권력 개입과 탈성매매를 지원하는 여성 인권 보호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종희 소장은 “현재 의료지원, 법률지원, 직업훈련지원의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장기간 성매매에 노출돼 있었던 여성들을 위한 심리?정서적 지지, 사회적 고립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지지체계 마련, 탈업소를 위한 주거공간의 지원도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업소를 벗어나 경제적인 활동을 꾸려가기 위해선 현재의 지원체계만으로는 매우 제한적이란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성매매’ 역시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 등과 마찬가지로 ‘여성폭력’의 하나로 정의하고, 관련 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명시한 점은 의미가 있다. 성매매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명시하고, 이를 법제화한 것이다. 


이후 관련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스웨덴의 ‘말뫼 프로젝트’는 참고할만하다. 스웨덴의 도시 ‘말뫼’에서 실시된 이 프로젝트는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대신 성매매의 해악을 대중적으로 알리면서 탈성매매를 지원한 프로젝트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성매매여성들이 탈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적 도움, 주거 지원, 직업알선 서비스, 의료서비스 등을 제공했다. 또 언론 등 대중매체를 통해 성매매로부터 빠져나온 여성의 경험을 보여주고 이를 지원하는 단체를 소개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1981년까지 여성의 72.5%가 성매매를 중단했다. 1983년 최종적으로 남은 성매매 여성은 60명에 불과했다. 이 프로젝트는 “다른 대안이 제공되면 성매매 여성들은 성매매에서 떠날 것”이란 전제 아래 여성이 성산업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광범위한 사회적 지원을 제공했다. 


스웨덴의 사례는 탈성매매와 집결지 폐쇄정책을 실시할 때 단순히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경제적 지원, 직업 알선 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식 개선 등 전 사회적인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 구매는 ‘권리’가 아닌 폭력이라는 것, 성 산업 구조가 여성의 신체적, 경제적, 정서적 착취를 기반으로 유지된다는 것, 그 구조 안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결국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 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대중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과 캠페인도 절실한 이유다. 천호동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이를 위해 업주나 지역 개발 담당자의 이윤이 아닌 여성의 인권 관점을 반영한 통합적인 탈성매매 정책이 시행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