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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68호] 그 많던 ‘몰카’는 다 어디로 갔을까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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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눈으로 다시보기]


그 많던 ‘몰카’는 다 어디로 갔을까



김한결 (위드유 서포터즈 5기)



수 년 전, 신문 한 귀퉁이에서 초소형 카메라 홍보를 본 적이 있다. 볼펜 끝에 달려있어 좀처럼 발견하지 쉽지 않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운 광고였다. 나 같은 일반인은 도무지 쓸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물건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은 일명 ‘몰래카메라’ 범죄의 심각성이 드러난 뒤였다. 어쩌면 내 몸도 이미 찍혀 사이버공간을 떠돌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공중화장실 여성칸마다 무수한 구멍들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된 여성들 대다수가 같은 우려를 했을 것이다.


최근 가수 정준영을 비롯해 유명 방송인들이 대거 참여한 단체대화방에서 오간 메시지가 공개되며 환상을 파는 연예인들마저 예외 없이 이 같은 여성혐오 문화의 일부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의 언행은 전 국민적 공분을 샀지만 피해자들은 보복성 유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명백한 피해 사실이 있는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외에도, 음란물 공유사이트에 ‘정준영 동영상’이 인기검색어로 떠오르고 SNS 상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노골적 추정이 사실인 양 떠도는 등 2차적 문제가 일기도 했다. 불법촬영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여성들은 불법카메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여성에 대한 사이버성범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시발점은 2015년의 ‘소라넷’ 폐지 운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려 100만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음란물사이트 소라넷에서는 10년 이상 불법촬영물이 유통됐다. 10만 개에 달하는 불법촬영물은 길거리부터 지인에 의해 촬영된 생활공간까지 여성이 활동하는 모든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 불법촬영 뿐 아니라 강간모의까지 소라넷에서는 온갖 성폭력 범죄가 공공연히 이루어졌으나 경찰은 오랜 기간 수사에 미진했다. ‘서버가 해외에 있어서’, ‘운영자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어서’, ‘음란물을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해서’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명맥을 이어오던 사이트를 폐쇄로 이끈 것은 페미니스트들이었다. 온라인 활동가들이 일제히 소라넷에 게시물을 올려 일시적으로나마 서버를 마비시킨 일을 기점으로, 개개인의 자율적인 모니터링과 신고가 이어졌다. 이후 진선미 의원이 소라넷 폐쇄를 촉구하며 수사가 시작됐고 이듬해인 2016년 주요 서버가 폐쇄됐다. 이 같은 승리가 발단이 되어 공공장소를 집중 단속하고 지하철 역사에 관련 공익광고를 부착하는 등 ‘몰카’를 중대한 범죄로 조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여성운동이 이루어낸 하나의 쾌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실상 소라넷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소라넷을 검색하면 제2의 소라넷을 자처하는 사이트가 대거 등장한다. 정부 역시 SNI 차단과 같은 정책으로 대처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이것이 근본적 대책이 될 수는 없다. 불법사이트를 차단한다 해도 대체할 사이트는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지금의 법은 많은 사각지대를 두고 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하거나 유포한 경우 4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증거를 직접 수집하여 제출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괴로움, 그리고 재유포에 대한 심적 부담감으로 신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불법촬영물 촬영과 유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이러한 촬영물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하여 보는 것 또한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


더불어 위에 언급된 성폭력처벌법 14조만으로는 방대한 양의 음란물을 유포해 이익을 취하는 헤비업로더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들이 콘텐츠를 유포할 시에 불법촬영물임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오마이뉴스. 처벌 안 되는 헤비업로더, 법에 애매한 빈틈 있다. 2018. 11. 09.). 실제로 웹하드 사이트에 수백 건의 음란물을 게시한 헤비업로더들은 겨우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매일경제. ‘음란물 수백건 유포’ 헤비 업로더 잇단 집행유예. 2019.04. 09.). 그러나 영상의 성격을 보아 이들 자신이 올리는 영상이 불법적으로 생산된 촬영물임을 모르고 있기는 어려우며, 모르고 있었다 치더라도 그 피해가 막중함을 감안했을 때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이버성폭력의 온상이 되는 플랫폼을 규제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다. 얼마 전 구속된 소라넷 운영진 일당 중 한 명인 송 씨는 징역 4년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와 추징금 약 14억 원 납부를 명령받았다. 경찰 공식 발표에 따른 그간 소라넷의 수익이 수백억에 달하는 것치고 합당한 처벌이라 평가하기 어렵다. 이렇게 음란물을 통해 낼 수 있는 이윤은 거대한 데 반해 처벌은 빈약하니 플랫폼 운영자들에게 자율적 규제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운영자들이 자사 사이트가 불법촬영물로 수익을 거두어들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제로 독일에서 시행되는 멀티미디어법에는 “서비스 제공자가 불법적이고 유해한 정보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차단 가능하며 그 차단조치가 합리적으로 기대될 수 있다면 서비스 이용자를 포함하여 제3자가 올린 정보에 대해서도 서비스 제공자는 책임이 있다”는 조항을 명시해 서비스 제공자의 의무와 책임을 묻고 있다(이동훈. 사이버 음란물 규제 방안에 대한 고찰 - ‘SNS 앱’을 중심으로. KHU 글로벌기업법무리뷰, 9(2), 185-218. 2016.).


지난해 정부는 공식적으로 ‘몰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불법촬영물은 음지로 숨어들었을 뿐 끈질기게 여성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여성들 사이에서는 불법촬영을 피하는 팁이 공유되기도 했다. 생활용품점에서 파는 바르는 실리콘은 화장실 벽에 뚫린 작은 구멍들을 막는 데 유용하다. 붉은 셀로판지를 휴대폰 카메라에 부착하면 간이탐지기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이 조심하는 방법으로는 결코 자신의 신체가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화장실 하나 맘 편히 갈 수 없다는 피로감을 해소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법촬영 범죄와의 장기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불법촬영물 촬영·유포 및 시청에 대한 처벌 강화와 함께 헤비업로더와 플랫폼 운영자까지 규제할 수 있는 개정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