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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원X헤이메이트_우리가 사랑한 모든 여자들에게]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윤이나)

  • 작성자김정미
  • 작성일2021-08-31
  • 조회738

<내 일과 내일을 위해>

- 우리 잘 싸웠지? 난 행복해 -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from. 윤이나)

 

 

최근에 한 친구와 우리가 가진 병, 그 중에서도 정신병이라고 분류하는 증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친구와 저는 세금 코드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창작의 영역 중에서도 글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죠. 한국 사회에서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저와 친구는 둘 다 정신과를 다니고 또 약을 먹고 있습니다. 병명은 다르지만 일을 하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약이 필요하다는 상황은 같아요. 저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던 친구가 문득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도 알고보면 산업재해 아니에요?”

 

깔깔 웃어 넘겼지만,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산업재해라는 단어가 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대체로 비슷한 병을 앓고 있다면 그건 병이 직업을 선택하게 한 걸까요, 아니면 직업으로 인해 병이 걸린 걸까요? 노동과 질병 사이, 선후 관계나 인과 관계는 분명한 걸까요? 우리들이 아픈 채로도 계속 일해야 한다고 할 때, 약이 낫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일일까요?

 

<내일을 위한 시간>의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도 상황도 비슷합니다. 우울증으로 휴직을 했던 산드라는 복직을 앞두고 있어요. 우울증 때문에 일을 쉬었다고 썼지만, 일을 했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아직 완전하게 나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복직은 해야만 합니다. 형편이 빠듯한 와중에 아이들을 기르고, 가정을 지켜나가야 하니까요. 그런 산드라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회사에서 산드라의 복직과 직원들의 보너스를 두고 투표를 했는데, 직원들이 보너스에 투표를 해서 복직이 무산되었다는 거예요. 산드라는 속절 없이 무너집니다. 깊은 우울에서 겨우 빠져나왔더니 현실은 더 잔인한 방식으로 발목을 잡고 끌어내립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는 산드라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줍니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 재투표가 결정된 것이죠. <내일을 위한 시간>의 원제는 ‘12입니다. 산드라는 주말 이틀, 12일의 시간 동안 동료들을 찾아가 보너스 대신 자신의 복직을 선택해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어려운 부탁이죠. 산드라의 휴직 기간 동안 동료들이 그의 빈 자리를 채우는 데 익숙해졌다면, 이들에게는 보너스를 택하는 게 훨씬 합리적인 일일테니까요. 산드라와 비슷한 형편의 동료들이니, 당장의 돈이 절실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요. 어떻게 보더라도 산드라의 노동은 동료들에게 득과 실로 계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드라는 무슨 말로, 어떻게 자신이 계속 일해야하는 이유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요?

 

마음을 바꾼 동료들도 있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예정된 곳으로 향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산드라의 복직은 무산됩니다. 이 소식을 직접 듣고 회사를 나오며, 산드라는 남편에게 전화를 겁니다.

 

우리 잘 싸웠지? 난 행복해.”

 

처음 <내일을 위한 시간>을 봤던 6년 전에는, 이 대사가 예정되어 있었던 실패를 대하는 산드라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개인의 연대가 필연적으로 실패한 뒤, 산드라는 내일을 향해 걷고 있다고요. 더 나빠질 미래로, 애써 담담하게. 하지만 지금은 산드라가 내 일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내일을 위해서 싸웠다는 것을 더 강조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렇게 다시 쓰고 싶습니다. 알 수 없는 내일로, 애쓰지 않아도 행복하게. 연대의 실패보다는 연대했던 마음이 준 행복을 안고 가는 산드라에게 또 다시 일과 미래가 찾아올 거라고 믿으면서요.

 

산드라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에게도, 아파서 일을 못하거나 일 때문에 아파지는 순간이 찾아오겠지요. 어쩌면 이미 찾아왔는지도 모르고요. 그럴 때면, 그러니까 지금, 산드라의 말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마저 잘 싸워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스스로 싸우며 방법을 찾아내고 선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누군가는 그 싸움을 해야만 행복할 수 있고, 행복이 될 수 있으니까요.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덜 아프고, 자주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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