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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7호] 21대 국회는 #미투에 응답하라

  • 작성자연구홍보팀
  • 작성일2020-03-25
  • 조회703


지금 여기 바로 그 이슈 21대 국회는 #미투에 응답하라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21대 국회는 #미투에 응답하라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긴장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상황에서 21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이번 총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 그리고 각 정당에서 여성폭력 방지에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이 내걸고 있는 공약은 무엇인지를 거리에서, 광장에서 직접 대면하여 듣고 질문하고 토론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쉽다. 특히 21대 국회는 2018년 이후 #미투운동이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과제에 응답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이번 총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30년동안 수 많은 피해생존자들의 ‘말하기’를 기반으로 반성폭력운동을 비롯해 정부와 국회가 부지런히 관련법과 제도를 만들어왔다. 그럼에도 미투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현행법이 미비하여 성폭력으로 규정하지 못했거나, 법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자의 권리가 외면 당했거나, 무고·명예훼손 등 역고소의 위험으로 말하지 못했거나, 주변이나 수사·재판과정에서 오히려 2차 피해를 입는 등의 누적된 문제들이 터져나온 것이다. 미투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관습·제도 등을 깨뜨리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혁명’으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20대 국회에서는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 무려 150여개의 성폭력 관련 법안이 발의 되었다. 그러나 통과된 법안의 대부분은 형량을 높이는 정도에서 국민정서 달래기식 이었을 뿐, 정작 강간죄의 구성요건 개정 같은 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는 법안은 5개 정당에서 10개의 법안이 발의되었음에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 법안은 이제 20대 국회 회기만료로 자동폐기 될 운명에 처해있다. 

사실 이러한 국회의 관행은 그리 놀랍지 않다. 그동안 국회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성폭력사건이 발생하면 앞다투어 법안을 발의했다가 여론의 조명이 꺼지면 그 법안들이 빛을 보지도 못한 채 폐기되도록 내버려두곤 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21대 국회는 이전과 다르리라는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국회는 국가의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심의하며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관이 아닌가.

국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이번 총선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조건은 ‘성평등과 인권감수성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 전제하에 젠더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Based Violence Against Women) 정책 중 성폭력 분야의 몇가지 정책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기술의 발전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이미지 생산이 불법촬영 뿐 아니라 합성·편집·가공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으나, 현행법으로 처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3월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4조를 보면, 반포?판매 등의 목적으로 사람의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영상물?음성물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욕망 또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성적 욕망 또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라는 문구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이 기준은 피해자 중심적으로 판단되어야 하고, 수치심은 가해자의 몫이어야 한다. 최근 n번방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에서도 보듯이 “지인의 얼굴을 음란물과 합성하여 유포하고, 해킹한 개인정보를 통해 협박하여 성노예화하고, 불법촬영물을 제작하여 익명의 단체대화방에 유포하고 수익을 얻는다. 이제 피해자의 피해는 범위를 특정할 수 없으며, 불법촬영물의 제작자와 소비자라는 전통적인 공식을 파괴하고 일반 남성들이 소비-유포-제작을 넘나들며 성착취 카르텔을 새롭게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폭력, 여성착취를 산업화하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을 강화해야할 뿐만아니라, 공범이라 할 수 있는 온라인상에 올려진 성착취 영상 등을 소비하는 이용자들에 대한 처벌방안 모색도 필요하다.


둘째,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개정해야 한다. 기존 요건의 폭행과 협박의 법적의미는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66개 성폭력상담소에 2019년 1월-3월까지 접수된 강간(유사강간 포함) 상담사례분석 결과, 피해사례 총 1,030명 중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피해는 71.4%(735명)에 달했다.

. 즉, 강간피해의 대부분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피해자들에게 피해 당시 폭행과 협박이 있었음의 증명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에게 피해자의 명확한 동의가 있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일반권고 35호 제29조(e)에 이를 명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18년에는 한국정부에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판단하라고 권고했다. 미투 운동이 던져준 과제 중 하나는 성폭력을 규율하는 형법체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젠더권력의 편향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셋째, 스토킹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 스토킹은 현행 경범죄 처벌법제3조의 41개 범죄 유형중 하나인 ‘지속적 괴롭힘’으로 규정되어있다.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에 대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스토킹범죄의 대부분은 친밀한 관계에 있던 남성에 의해서 발생하는 성별화된 범죄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잘 알고 있어서 더욱 위험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혹은 관계를 중단하는 과정에서 폭력의 양상이 매우 심화되는 특징이 있다. 법제정을 위한 노력이 1999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19대 국회까지 총 8개의 스토킹범죄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20대 국회에서도 7개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이 역시 곧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될 상황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지난 20여년간 변죽만 울리고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스토킹 관련 법안을 제정하여 일상생활을 위협받고 있는 스토킹 피해자를 구제하고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넷째, 2019년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여성폭력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명백히 하고, 여성폭력방지정책의 종합적·체계적 추진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개인의 존엄과 인권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제정과정에서 그 본질과 필요성을 담은 내용이 왜곡되거나 삭제·축소되었다. 정책 실효가 담보되려면 예산집행이 필수적인데, 예산집행에 관한 조항은 모두 임의조항으로 바뀌었고, 여성폭력 예방교육 실시에 관한 조항도 임의조항으로 수정되어,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국가의 책무성이 축소되었다. 국가의 책무성을 수행하기 위한 기구인 “여성폭력방지위원회”의 소속마저 격하되어 집행력을 담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향후 이 법은 여성폭력 및 여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정의 확대, 피해자 보호·지원과 여성폭력 예방교육의 의무화, 여성폭력에 대한 성인지적 사법처리 조항 마련, 집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운영 및 구성 등의 과제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21대 국회에서는 위에 소개한 성폭력 관련법(1994)만이 아니라, 가정폭력방지법(1997), 성매매방지법(2004) 등 소위 여성인권법으로 불리우는 법안들을 조율하고 다듬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내에 ‘여성폭력 관련 형법 및 특별법 개정 특별위원회’ 구성하여 현장을 기반으로 한 연구 및 전문가 논의를 거쳐 제대로 법개정을 해야한다. 특히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판단하는 것은 단순한 법개정을 넘어 우리사회의 성폭력의 의미구성을 다르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기본을 다지는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21대 국회는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기본 ‘상식’이 통하는 국회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