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폭력을 부조리한 유머로 기록하다
- 애나 번스 <밀크맨>
유튜브'채널 수북' 운영자 '리외'
당신은 카페라는 일상적 풍경 속에 들어선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과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사람들과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을 만지작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구석 자리에 어느 젊은 여성이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보거나 읽지 않은 채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이 여성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좀 이상한데.’ ‘사이코패스인가?’ 어쩌면 당신은 돌아서서 일행에게 저기 좀 봐, 저기 저 여자, 좀 이상해 보여,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따금 혹은 지나치게 흘긋대며 수군댈 수도 있다. 메신저 창을 켜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내가 오늘 카페에 갔는데 말이야, 저런 여자가 있더라. 그러고는 아마도, 잊을 것이다.
애나 번스는 바로 그러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50주년을 맞은 맨부커상을 기념비적으로 수상한 소설 <밀크맨>의 화자는 “길을 걸으며 책을 읽는 젊은 여성”이다. 그 여성은 어떠한가? 왠지 이상하다. 자연스럽지 않다. 비밀스럽고, 꿍꿍이가 있어 보인다. 괴상하고, 소름끼치며, 비딱하고, 관습에 어긋나 있으며, 사회적이지 않다. 어딘가 잘못됐다. 정상이 아니다. 상도에서 벗어났다. 미친 여자다.
이러한 서술이 과한가? 묘사가 극단적인가? 그러나 “복잡하게 얽혀 있고 지나치게 비밀스럽고 뒷이야기를 좋아하고 청교도적이면서 외설적이고 전체주의적인”(p.245) 지역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과연 이 지역은 어디일까? 소설의 배경으로 추측되는 1970년대 북아일랜드?
실제 1970년대 북아일랜드에서는 ‘물 건너 나라(영국)’에 속해 있기를 바라는, 주로 개신교도인 연합주의자 준군사조직 ‘수호자’들과,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바라는 가톨릭교도 분리주의자들의 준군사조직 ‘반대자’들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극심했다. 서로를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고 끔찍한 폭력을 행했다. 밀고자와 배신자들이 있었고, ‘지역 방어’나 ‘대의 추구’나 ‘즉결 심판‘ 같은 단어들이 공중에 떠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다만 과거일 뿐인가?)
“이곳은 의심, 추측, 부정확에 열광하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제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불가능한 곳이라 뭐라 말하건 말건 무조건 그게 진리가 되었다. 우리 공동체에서 그 진리를 믿으니 우리를 경멸과 편견으로 대하는 국가에서야 당연히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도 사진 찍고 파일에 넣고 확대해석하고 사실로 믿지 않겠나?” (p.324)
그러나 소설 속 모든 인물은 ‘아무개의 아들 아무개’ 혹은 ‘첫째 형부’ ‘알약소녀’ ‘어쩌면-남자친구’ 등으로 전부 익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지역’은 작가 애나 번스가 나고 자란 벨파스트가 아니라 어디든 될 수 있고, 시대 또한 1970년대가 아니라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중세가 될 수도 있고 미투 운동이 발생한 현재가 될 수도 있다.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지명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인물들과 사건들은 어떠한 상징이 된다. 원형이 된다.
사람들은 ‘나’에게 ‘조심하라’고 말한다. 왜, 무엇을? 왠지 이상해보이니까, ‘문제 여성’으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길을 걸으며 책을 읽지 말라고 경고한다. 게다가 19세기 책을 읽는다니, 그건 더더욱 이상한 일이므로 그런 작품은 집 안의 책상 앞에서 혼자 읽어야지, 대낮에 버젓이 길을 걸으며(게다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도로’에서) 여기가 아닌 자기만의 내밀한 세계에 빠져있는 일은 위험하다. 정치적 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비밀 첩보 요원들이 사진을 찍거나 도청을 할 수도 있고 칼이나 총을 들이댈지도 모르는 데다 곳곳에서 숱하게 테러와 죽음이 발생하고 분리와 배제와 편 가르기와 의심이 난무하는 시절에는 더더욱.
급기야 ‘밀크맨’이라는 남자가 ‘나’를 스토킹하는 일이 발생한다. 하얀 승합차를 타고 와서 차 문을 열며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남자다. 소문에 따르면 국가반대조직의 거물이라는 ‘밀크맨’은 가정도 있고 돈도 많으며 ‘나’를 정부(情婦, 내연 여성)로 삼으려 한다. 그리고 ‘나’는 그에 응했고, 그리하여 마흔한 살 남성과 열여덟 살 여성의 관계는 ‘불륜’으로 규정된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기꺼이 아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 역겨운 소문들이 끊이지 않는 세계, 불길함과 두려움과 수상함이 발명되는 세계다.
“그가 등장해 나를 망가뜨리기 시작한 이래로 그를 마주친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고 그것도 처음 자동차를 타고 만났을 때에만 그가 나를 쳐다봤을 뿐 그 뒤에는 한 번도 쳐다보지도 않았고 나에게 외설적이거나 도발적이거나 희롱하는 따위의 말을 한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한테 손을 댄 적도 없었다. 손가락 하나도. 단 한 번도.” (p.244)
물리적 위협만 폭력일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 일이 정말 있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보이지 않는, 말에서 말로 옮겨 다니는 억압의 구조에 대해서는? 말하더라도 아무도 나를 믿지 않는다면? 이미 소문이 기정사실이 되었다면?
‘밀크맨’은 ‘나’를 어디든 따라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갑자기 나타나 가족관계와 애인에 대해 암시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미래의 위험(죽음)을 알려주는 척한다. 이 모든 행위가 위협이며 폭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마을 사람들은 ‘나’를 기이한 별종으로 이미 낙인찍었기에, 점점 더 괴상한 소문들만 퍼져 나간다. ‘나’는 그 모든 가십에 대해 고집스레 침묵을 택한다. 허황되며 왜곡된 언어에 대항하는 방식으로서, 침묵은 고집스러워진다.
단지 곤란한 존재라는 이유로, 당혹감을 주는 존재라는 이유로 ‘나’에게는 낙인이 찍혔으나, ‘나’에게는 (당연하게도) 자아가 있고, 매 순간의 생각과 감정이 있으며 자신만의 판단을 할 줄 알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정신적 무기력과 혼란이 ‘밀크맨’으로 인해 점점 심화되지만, 날조된 소문에 혐오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나’는 걸어 다닌다. 술집에도 가고 감자튀김 가게에도 가고 시내 프랑스어 수업에도 가고 접근 금지 구역에도 간다. 그러다 독약을 먹게 되거나 죽은 고양이 머리를 발견하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확실히 결론을 내린 문제에 있어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감정적/지적으로 예민한 상태라는 사실을 감추었을 뿐 실제로 예민한 상태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나는 지각력이 있었다. 당연히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당연히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내 몸에서 자연적인 반응이 들끓는다는 것도 당연히 알았다.” (p.252)
이 책은 고발하지도, 윤리성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다만 한 여성의 끝없이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려줄 따름이다. 선택적 기억 상실과 미시감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 전략을 택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잊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것에 반응하고 있는 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시간 순으로, 이름 하나하나를 대면서 토로하고 폭로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주절거리는, 빠짐없이 말하려다 오히려 두서없어지는 목소리를.
직접 읽지 않으면 이 부조리하게 웃긴 소설의 진가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목소리 자체의 독특함에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 있다. 너무 황당하고 얼토당토않아서 거의 농담에 가까워 보이는, 너무 부조리해서 오히려 우습거나 초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사건들이 끝없이 줄지어 발생하는데 그 사건들은 전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대입해볼 수 있는 일들이다. 지극히 생생하게 현재성을 띤다.
여성을 숭배하거나 비하하는 남성들, 스토킹 폭력, 가부장적 사회에서 희생이 당연시되는 여성의 삶, 공동체 전체가 용의자가 되는 집단주의 사회 속 소문의 폭력,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 거기에 테러와 수습되지 않는 무수한 죽음들, 성소수자, 정치 이데올로기로 인한 인간성 몰살이라는 문제까지도 들어 있다. 전형적으로 보이는 주제들을 녹여냈으나 그 목소리가 너무도 독특하다. 폭력의 피해자이기만 하진 않은 여성, 순진무구한 열여덟 살 어린애도 아닌 어느 여성의 목소리. 많은 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종종 키득키득 웃으며 이 책을 읽게 되리라 확신한다.
‘할렐루야! 그가 죽었어! 씨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p.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