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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4호]<페미니즘 책으로 읽기> 성매매가 불편한 현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경험일 때 : 「페이드 포」를 읽고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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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가 불편한 현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경험일 때

레이첼 모랜 <페이드 포>를 읽고

유튜브'채널 수북' 운영자 '리외'



니네 엄마 창녀지?”

 

90년대 초등학교에서는 이렇게 유해한 농담이 무해한 아이들 사이에서 통용되곤 했다. 나는 그 말을 뱉은 남자애에게 다가갔다. 그 애는 당시 유행하던 브릿지를 앞머리 왼쪽에만 넣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서 그 애의 책상과 의자를 모두 넘어뜨리고 넘어진 의자를 다시 주워다 이미 꽈당 넘어져있는 그 애한테 던졌다. 돼지 같은 놈. 아마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청소 시간이었다. 지황이는 아픔에 겨워 끙끙댔고, 다음날부터 2주 정도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화는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았다.

 

왜일까? ‘창녀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적이라는 것을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음에도, 성매매 여성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 그러니까 그들은 일종의 모욕적 행위를 수행하는 이들이라는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떨치기 어려웠다. 생물학적 성별이 같았으나 그들과 나 사이엔 거리가 있었다. 거리를 두고 싶었다. 모른 체 하고 싶었다. 대화 자리에서 성매매가 언급될 때마다, 점잔을 빼며 참 안타까운 일이지......’라고 읊조린 뒤 입을 다물곤 했다.

     

레이첼 모랜은 나와는 반대 극에서, 즉 성매매 산업에 가까이 가보거나 들여다본 적 없고 그러한 세계가 있음을 모른 체하며 대낮의 길거리를 웃으며 걸어 다니는 이들의 정반대편에서 이 책을 썼다. 그는 열네 살에 탈가정하고, 열다섯 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어 7년간 성매매 안에서 착취당했으며, 탈성매매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페이드 포>를 집필했다. 부제는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계급과 계층, 권력 문제가 소거된 것처럼 보이는, 대등한 개인 간의 상상 가능한 갈등을 다룬 책들을 안온하고 수월하게 읽던 내게, 이 책은 존재 자체로 무겁고 불편했다. 무겁고 불편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또 다른 기만이다.



 

성매매에 유입되어 있던 10대에는 세상과의 단절감이 너무도 크게 작용한 나머지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까더라도 내가 가위를 들고 있는 그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에 가서 술을 주문할 수는 있어도 내가 바에서 서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도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자리들에는 생득적으로 적절함과 정상성, 품위가 있었고 슬프게도 나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그런 품성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p.30)

 

분열적 정신장애를 앓던 어머니와 우울증이 깊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그 둘이 간신히 꾸린 방임적 가정 안에서 물리적 가난과 비물리적 시선 속에 끊임없이 놓였던 어린 시절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철저하게 경험적인 시선에서 쓰였기에, 저자가 감각했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증언의 성격을 띠며, 회고록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성매매 경험이 단순히 개인의 회고록이 될 수는 없다. 이미 성매매라는 구조가 정치적이며, 그에 유입되어 있던 당사자는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기에.

 

모랜은 자신의 경험과 다른 여성들의 경험(생존 전략과 학대, 폭력과 우울, 그들을 둘러싼 무수한 편견들까지)을 집합적으로 서술하고, 성매매에 관한 연구 결과와 분석적 자료들을 경험과 교차하며 서술했다.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방대한 을 가능케 한다. 우리 중 절대 다수가 단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어떤 것, 성매매에 대한. 추천사를 쓴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는 이 책을 성매매에 대한 교과서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성매매 여성’, 이 단어가 책 전반에 수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모랜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책을 다시 쓴다면 결코 성매매 여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썼다. 그는 노예라는 단어를 예시로 든다. ‘노예라고 지칭하는 것과 노예가 된 사람들로 지칭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논의의 대상은 사람들이며, 노예(성매매)가 된 상태는 그들에게 가해진 상황이지 노예(성매매)의 본질 자체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철저하게 대상화되고 포르노화되는 여성들이 있고, 그럼에도 그들은 성매매 여성 그 자체가 아니며 성매매된 여성이라는 인식. 얼얼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언어였기에.

 

인간의 경험을 설명하는 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구성하며 특히나 성매매는 아주 절실하게 이해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논의하고, 골똘히 생각하고, 궁리해보면서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p.18-19)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성매매에 유입된 이후에 여성은 성 착취의 대상이 된다. 또한 약물중독과 같은 문제에 노출되고, 스트립과 포르노라는 여성혐오 산업에 지나치게 가까이 놓이며, ‘정상사회로 편입될 가능성으로부터 급속도로 멀어진다. 양태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든, 성매매의 본질은 젠더화된 폭력이다. 세계적으로 약 4천만 명의 여성이 성매매라는 구조 안에서 학대되고 있으나, 전체 인구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수이기에 그 여성들은 다수(의 정상성)’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성매매를 경험한, 또 운이 좋아 벗어날 수 있었던 여성들은 수치심으로 인해 자신을 발화할 수 없고, 그래서 신화와 오해가 겹겹이 쌓여있는 영역이 성매매다. 주변에서 더욱 주변으로 밀려나고, 예외적 폭력의 현실이라 치부되어 내팽개쳐져 있는.

 

성매매에서 타락은 스스로 증식한다.” (p.131)

 

레이첼 모랜은 탈성매매 이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했는데 그렇지 못한 여성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출산과 양육 등 모종의 정상성을 획득했음에도, 그는 성매매 경험의 끔찍한 트라우마를 지금까지 지니고 있다. 목욕하다 문득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혐오스럽게 여기고, 벽을 가만히 매만지며 내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다니, 생경해하는 모습을 보며 독자는 침묵하게 된다. 수치심은 슬픔보다 더 고질적으로 머문다.”

 

<페이드 포>불편한 현실을 담은 책이라기엔 그 무게가 절대적으로 다르다. 3자로서 문제 상황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시선만을 경유해 전달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 직접 겪고 지나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paid for’를 직역하면 값을 지불하다, 빚을 갚다, 대가를 치르다, 라는 뜻이다. 10년 넘는 기간 동안 집필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명을 쓸까 극심하게 고민했다던 모랜의 고통은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존엄을 획득함으로써 그 값을 치렀는지도 모른다.

 

해외에서 여러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추천되고 화제가 되었으나 국내에서는 반성매매 활동가와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던 이 책이 대중을 향한 책으로 발간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의미가 있다. <페이드 포>는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착취가 분명하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착취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머리로는 알았으나 진정으로는 알지 못했던 모두에게 이 책은 고통스럽지만 경이로운 독서의 경험을 건넬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하기도 하다. 또한 읽고 나서는, 다른 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게 한다. 레이첼 모랜이 이 책의 큰 역할로서 소망했던 것이 바로 그것, 말하기와 듣기 그리고 교차와 연결을 거듭하는 풍성한 논의일 것이다. 존중하는 만큼 토론해야 한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삶을 걸고 10년 넘는 시간 동안 이 책을 쓰고 내기까지 어떠한 용기를 냈는지는 그 어느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발화를 공적 장으로 이끌어낸 출판사 안홍사’, 번역가이자 반성매매 활동가인 안서진 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 <페이드 포>는 텀블벅 후원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되었고, 현재 서울의 이후북스, 책방비엥, 초판서점과 포항 달팽이서점,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입고되어 있다. 이후 입고 서점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