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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1호]<페미니즘 책으로 읽기> '그 딸이 무사하기를' - 로빈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 작성자진흥원
  • 작성일2019-07-30
  • 조회3394



그 딸이 무사하기를 -로빈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 딸이 무사하기를"

-로빈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리외 (유튜브 채널 수북 운영자, 프리랜서 리서처/번역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

 

유년기에 읽었던 수많은 여성 위인전으로부터 배웠다.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당위는 스스로 부과한 것이기도 했고, 학습된 것이기도 했다. 과한 의무감을 왜 스스로에게 부과했는가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결국 도달하게 될 지점이 어디일지 알면서도.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첫째가 집을 나갔습니다라고 시작되는 한 어머니의 글을 읽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남동생 목에 칼을 대고, 아버지의 차 유리창을 골프채로 부수면서, 그만 차별하라고 그만 억압하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딸. 얼마 전 네이트판에 올라온 그 글을 한동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유는 명백했다. 꼭 그맘때의 내게도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내게도, 길거리 한복판에서 뺨을 맞고 발로 채이던 밤들이 있었다. 머리채를 쥐어뜯기고, 날아오는 물건들을 온몸으로 맞던 시간들. 무릎 꿇린 채 현관 밖으로 떠밀려나면서도 이를 악물고, 잠옷 바람에 빈손으로 내쫓겼을 때 저 멀리 달음질쳐 트럭 뒤에 웅크리고 있던 나를 용케 찾아낸 부모의 손아귀에 붙들려 집으로 돌아가던, 그 순간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조현병인 줄 알았다고, 미친 사람처럼 난리를 치기에 놀라고 걱정이 되었으며 딸의 연락과 무사 귀환만을 바라고 있다며 글을 마친 그 어머니는, 학대 신고가 접수되고 청원 글이 올라가고 사태가 커지자 법적 대응을 하면 오히려 딸이 불리할 것이라는 말을 덧댔다. 딸이 돌아오면 진지하게 논의하고 딸의 의사를 물은 뒤 극단적으로 행동할 경우에 대비해 정신병원 강제입원 조치를 취해볼까 고민 중이라는 문장도 있었다.

 

가해자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다. 혹은 자신이 실제로 상대방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가해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이다. 가해자가 강하고 힘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불안정하고 화를 잘 내는 어린애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어떠한 유형의 사람이건 그는 자신이 약하고 무기력하다고 느낀다. 그는 스스로 힘이 있다고 느끼기 위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상대방도 거기에 동의하게 만들려고 한다.” (로빈 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중에서)

 

집을 나가 전화번호를 바꾸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던 그 딸은, 부모가 자신을 정서적으로 조종하고자 할 때 스스로를 의심한 적 없을까. 내가 참아야지, 어쩌면 내가 틀린 건지도 몰라, 내가 예민한 걸 거야, 생각한 적 없을까. 부모의 정서적 학대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동조한 적 없었을까. 그리하여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가스라이팅 관계의 공모자가 된 시절이 없을까. 아닐 것이다. 수많은 딸들이 그러하듯이.

 

가스라이팅은 단순한 정서적 학대가 아니라고, 심리학자 로빈 스턴은 말한다. ‘단순하지 않은 이유는, 항상 두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와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자신의 지각력을 의심하는 피해자가 있어야만 가스라이팅이 성립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이 만연한 까닭은, 특히 가족 관계일 경우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한 소녀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 하지만 이런 태도는 가해자가 우리를 형편없이 취급했다는 사실을 묵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당신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좋은 행동을 해야 할 책임을 모두 혼자 지고 있는지 의문을 가져보자. 가스라이팅은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가해자에게 보조를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야 그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 (로빈 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중에서)

 

나 역시, 수많은 딸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딸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오랫동안 짊어져 왔다. 그것이 자존감을 짓누르는 줄도 모르고 자발적으로 노력했다. 부모가 옳다고 말하는 것을 늘 옳은 것이라 여기기 위해 스스로를 불신하고, 끊임없이 의견 일치를 연습했다. 흑백논리 속에, 그들의 편에 머물러야 할 것만 같았다.

 

동시에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떨칠 수 없었다. “너는 너무 이기적이야” “결국 친구들은 다 너를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버림받을 거야” “그동안 너에게 못해준 게 없으니 이제 네가 하나씩 정확히 갚아야 한다” “누가 널 믿을 것 같니”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면 네 격이 떨어진다” “네 말에 정말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같은 말들을 듣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 말들 때문에 괴롭다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여겼다. 정당한 비판과 인격 모독의 경계는 어디인지 의심한 순간들도 많았으나, 그것은 끝끝내 나만의 의심으로 남았다.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어야 하니까.

 

불쾌한 공기처럼 내내 곁에 머물던 부모의 말들이 가스라이팅의 가해자가 하는 전형적인 발화라는 것을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생각나게 만들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위협하며, 문제가 있는 다른 관계를 이용해 비난하고, 기억이나 현실감각을 흐리는 말들. 죄책감을 심는 말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말들은.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가해자가 처음부터 사악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은 주로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만을 생각한다. 그들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에 어긋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름대로 세상에 대한 논리를 세우고 있으며, 피해자 역시 자신과 동일한 논리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참을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로빈 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중에서)

 

가스라이팅이 정서적 학대이자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의 핵심이다. 네이트판의 그 글에 대해 우리 집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이라 말문을 여는 이들이 겪은 것 또한 본질적으로 학대이자 폭력일 수 있다. 더군다나 친밀한 관계(부모, 연인 등)에서의 가스라이팅은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자기불신과 수치심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에 은폐되기도 쉽다. 특히나 자녀 양육 과정에서 자행되는 부모의 정서적 학대는 얼마나 오랫동안 엄격한 사랑이나 인격 함양의 방식으로 용인되어왔는가.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가스라이팅이 점점 악화되며 반복되다 보면, 피해자의 정서는 마비된다. 자신의 견해나 요구는 쓸모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가해자의 영향력에 압도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 다다르면 오직 가해자의 인정을 받는 일만이 중요해진다. 그것이 로빈 스턴이 명명한 파국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연인 관계, 직장 상사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십대 초반의 내가 꽤나 오래 벌였던 행각은 결국 가스라이팅에 동조하는 일이었다. ‘당신들은 틀렸다, 혹은 나를 인정해달라고 감정적인 호소로 반박한 것이다. 결국 스스로를 평가하고 이해할 수 있는 권한을 상대에게 부여한 셈이었다. 한때 우상이었던 부모에게 한 치의 오해도 받고 싶지 않았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성과 진심과 노력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그것이 무의미함을 스스로 납득하는 데 너무 긴 시간이 필요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당신은 정말 조심성이 없어라고 가해자가 말하면 피해자는 당신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그렇죠라고 가볍게 웃어넘기는 대신 절대 아니에요!”라고 우기고 싶어 한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이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까지 불안하고 초조해한다. 가해자가 돈을 어쩜 그렇게 물 쓰듯 쓸 수 있어!”라고 말하면 정상적인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같을 순 없잖아요. 내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신경 끄시죠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몇 시간 동안 비참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혹여 가해자가 옳은 것은 아닌지 절망적으로 고민할지도 모른다.“ (로빈 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중에서)

 

올바르게 보이려는 욕구가 클수록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기 쉽다. 상대방이 생각하는 와 내가 생각하는 가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였더라면 가스라이팅의 악순환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판단력과 결정권을 부모에게 양도했다. 욕이나 과장, 모욕으로 인해 자아에 상처를 입고, 공격당한다고 느낄 때 귀를 닫거나 대화를 중단하기는커녕 심하게 반발했다. 이기고 싶었다. 이겨서, 내가 옳다는 것을 그들에게서 승인받고 싶었다. 반발은 인정받으려는 데서 연원한다는 것을 오랜 뒤에야 알았다. 또한 가스라이팅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존재해야 성립하는 것임을, 내가 가해자의 영향력 행사에 스스로를 노출시켰음을, 그리하여 가스라이팅에 동조했음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에 공동 책임을 진다는 문장은 그래서 뼈아프다.

 

한 대상과의 가스라이팅 경험이 강하고 지속적이었을 경우 다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완전한 이해와 무조건적 수용을 바라는 마음은 부모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떨친 이후에도 계속됐다. 친밀한 관계에서 옳음을, 착함을, 강함을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은 집착이 되어 숱한 관계를 망가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