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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71호]<특집> 친밀한 관계폭력을 통해 바라본 젠더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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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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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관계폭력을 통해 바라본 젠더폭력


강희영(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이나 지인이 강력한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며 절규하는 모습은 뉴스 등을 통해 종종 접할 수 있다.

사고·사건이나 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적대적 관계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실제 모든 피해자와 가해자가 사건이나 사고 이전에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가 사건을 계기로 적대적 관계로 조우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제는 누구나 범죄로 인식해야만 하는 가정폭력의 경우에서만 보더라도 피해자와 가해자는 애초 가족으로 묶여 있었다.

또한 성희롱을 전면적으로 문제제기했던 신교수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교수와 조교로 이미 함께 일하고 있던 사이였다.

나아가 성폭력 피해 중에서 친족 성폭력 문제까지 성별에 기반한 권력 관계에 기초하여 여성을 주로 피해자로 만드는 젠더폭력 범죄는 전혀 모르는 타인 사이에서 발생하여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적대적 관계가 생성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친밀한 관계에 있던 일방이 가해자로서 다른 일방에게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문제가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젠더폭력의 문제에서 사귀고 있거나 이전에 사귀었던 연인에 의해 폭행을 비롯해 살인에 이르는 범죄 피해를 입게 되는 데이트폭력또한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전혀 새로운 현상도 아니고, 그 심각성은 신체적 피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 2012)는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폭력의 범주에 신체적, 성적, 정서적(심리적) 폭력과 함께 행동통제(controlling behaviours)를 포함시키고 있다. 국내 연구에서도 행동통제를 데이트 폭력의 한 유형으로 포함시키고 있으며(이화영, 2014), 데이트폭력을 단순한 폭력사건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위험이 포함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오세연·곽영길, 2011)도 제시되고 있다.



서술한 내용은 2018년 초 서울시에서 발표한 여성의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보고서 서론의 인용이다. 당시 나는 연구 책임자였고,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나의 고민은 데이트폭력이 그렇게까지 새로운 문제가 아니며 지금까지 논의되어 온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을 최대한 연구 도입부에서 말하고자 하였다.

 

문제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내 생각과 다르다는 현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어떤 연구를 했을 때보다도 많은 남성들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인생에 그렇게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과 통화를 한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였다.

 

항의의 요지는 무척 단순했지만, 의견은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행동통제나 언어폭력을 어떻게 폭력으로 볼 수 있느냐, 왜 쓸데없는 조사로 남녀의 갈등을 조장하냐,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 부담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남성의 피해는 왜 다루지 않느냐 등을 비롯하여 보다 전문성으로 포장한 항의도 있다. 통계청의 승인을 받은 통계냐, 인구 대비 정확한 표본 설계가 되어 있느냐, 웹 조사를 신뢰할 수 있느냐, 데이트 경험을 가진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피해 빈도를 보는 것은 피해율을 높이려는 음모 아니냐 등 등.

 

고백하건대, 연구자로서 나는 어떤 음모에 가담할 생각도 없거니와 조사 과정의 객관성,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은 할지언정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대변할 책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누구도 나에게 그런 권력을 부여한 바 없다. 다만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범죄를 사각지대 없이 처벌하거나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데이트폭력처럼 그 심각성이 특정 시점에서 불거질 때 정책이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의 의무는 느끼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젠더개념은 인간을 여성과 남성으로 이분하여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를 작동시키는 체계를 문제시하며 도입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삭제된 채 양성을 다루는 중립적인 용어로 젠더가 사용되고 있고, 젠더폭력 또한 사회구조적 통찰 없이 단선적으로 이해·설명되고 있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비슷하면서도 각각의 사건으로 흩뜨려져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조각들을 맞추어 젠더폭력으로 엮어내는 과정은 고단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 그로 인한 폭력의 문제가 한 쌍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일인 동시에, 그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폭력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폭력 피해가 있더라도 사회구성원들이 제 역할을 하며 피해자·생존자를 지원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약속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구 과정에서 젠더를 이야기하는 것이 양성평등에 매몰된 생물학적 성별, 지정 성별의 형평성이나 기계적 균형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이론적 논의에는 이르지도 못하였다. 남성의 피해가 없다는 주장을 한 적도 없다. 기존의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등으로 개별화된 젠더폭력의 파편화 문제를 데이트폭력을 통해 환기하고자 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기획은 일부 실패했고 일부 성공했다.

 

다양한 항의의 와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꽤 인상적인 내용이 있다.

아니 전화 받는 분은 남편한테 넥타이 이거 매라, 옷 이거 입어라, 저녁에 일찍 들어와라, 얘기 안 해요? 그럼 그것도 다 폭력이에요? 어디 답해 보세요. 왜 말을 못해요?” 대답을 채근 받으면서도 즉답을 할 수 없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소신을 가진 연구자인 동시에 공공기관 직원이기 때문이었다. 어처구니없는 항변에 맞대응할 할 수도 없었거니와 이미 그분이 원하는 응답은 정해져 있을 터였다. “전화거신 분 죄송하지만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상황을 그냥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통화는 의외로 쉽게 정리되었다. 날카로운 이야기를 30여분이나 이어가던 그분은 갑자기 당황했고, “, ...나도 애인이 있는 건 아니고...” 전화는 그대로 끊어졌다. 그 대응방식을 어떻게 이해할지 한동안 난감했다. 나는 사회 통념상 더 이상 젊지 않은 여성이다. 그 점은 통화과정에서 이미 드러났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졸지에 남편 없는 불쌍한 여자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전화를 걸 때 그 분은 분명 데이트폭력의 문제, 행동통제나 언어폭력을 폭력으로 보는 관점이 불편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던지는 말 또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전화를 끊었던 것이라 짐작한다. 제발 그랬길 바란다. 그렇다면 나의 기획은 아주 조금은 성공한 것이리라. 다만 여전히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남편 없는 불쌍한 여자가 되어버린 나는 어찌할 것인가?

 

내 기획의 또 다른 성공을 위해 언젠가 다시 전화 걸어 올 분들께 통화로는 못 전할 메시지를 남긴다.

폭력은 폭력이다. 젠더폭력 또한 다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이 젠더폭력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해서 폭력이 폭력 아닐 수 없고, 젠더폭력이 젠더폭력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는 없다. 폭력이 정의가 아닐 때 젠더폭력 역시 정의일 수 없으며, 젠더폭력이 처벌될 문제라면 친밀한 관계 안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무마될 수는 없다. 관계에 가리고, 다양한 설명과 핑계로 감추려 해도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