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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70호] ‘내 안의 용기’가 나를 지킨다

  • 작성자진흥원
  • 작성일2019-06-25
  • 조회1366


‘내 안의 용기’가 나를 지킨다



‘내 안의 용기’가 나를 지킨다


이회림 울산지방경찰청 형사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후미진 모퉁이에서 어떤 아저씨께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더니, 성기를 꺼내 흔들면서 저를 향해 느끼하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갑작스럽게 성인 남성의 성기를, 그것도 환한 대낮에 정면으로 보게 된 터라 낯섦과 불쾌함 속에서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선 그 앞을 지나쳐 가야만 하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불쾌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고, 발은 안 떨어지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이 미친 @#$%&*가~ 어디서 &*()^%$~!!” 매우 높고 새된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습니다.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아주머니께서 대문을 열고 나오시다가 아저씨를 보자마자 소리를 꽥 지르셨습니다. 그 생명력 넘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덕분에 정신이 확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의 카랑카랑한 사자후를 뒤로 하고 마구 뛰어서 학교 정문까지 내달렸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됐습니다. 하루는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또 다른 이상한 아저씨와 마주쳤습니다. 이 아저씨도 성기를 꺼내서 저를 미소 띤 얼굴로 쳐다보며 흔들고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불쾌감이 엄습했고 살짝 몸이 굳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3년 전과는 달리 저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를 도와주는 뽀글머리 아주머니는 없었지만, 굳어 있던 몸을 이완시키고 긴장한 두 다리를 움직여서 자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속에서 ‘용기’라는 감정이 튀어나왔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3년 전 뽀글머리 아주머니처럼 대차게 빽~ 소리 한 번 질러주거나 아예 아무런 반응을 하지 말고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은 우리 삶에서 갑작스럽게 끼어든 우연입니다. 지금까지 유지해온 삶의 모양과 다르게 놓인 생소한 사건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범죄 상황 앞에서 우리 자신을 잘 지킬 수 있을까요?


태권도, 유도 등 신체방어술을 배워서 위급할 때 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직접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만, 그 이전에 우리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용기’ 입니다. 우리 안에 ‘용기’가 살아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게 하고, 견디게 하고, 또 자신을 지키는 정신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호신술을 몸에 익힌 사람일지라도 ‘용기’가 없으면 배운 것을 활용하지 못합니다. 슈퍼 히어로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러한 능력을 끄집어낼 마음가짐, 즉 ‘용기’가 없으면 다 무용지물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겁쟁이 사자가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 것도 ‘담대한 용기’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중에 전혀 위험을 느끼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쳐올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위험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 그 위험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능력 모두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안의  ‘용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제가 권하는 방법은 주변에 있는 유도, 태권도, 합기도 등 무도장에 찾아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배워 보는 것입니다.  경찰이든 원더우먼이든, 어벤져스의 최강 여전사 캡틴 마블이든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 줄 이들이  오는 데도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데에는 단지 수 초에서 수 분이 걸릴 뿐입니다. 어떠한 범죄 상황이든 가해자와 나는 1대 1의 대치 상황이고, 여기서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내 안의 용기’를 바닥까지 긁어서 밖으로 끌어내시길 바랍니다. 


단순히 범죄 피해를 겪을 때만 ‘용기’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바바리맨을 향해 대차게 욕설을 퍼부어 아무런 물리력 없이 말로만으로도 제압해 버린 그 뽀글머리 아주머니의 행동 또한 ‘용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범죄 상황에서 ‘용기’를 내지 못했어도, 피해를 겪었어도, 최소한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집중하시면 좋겠습니다.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용감합니다. ‘피해자’를 ‘생존자’라는 표현으로 바꿔 부르는 이유도 피해 입은 사실보다 그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살아있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피해자들의 생존 경험은 이미 각종 무술의 1단을 부여받은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그렇지 않은 분들에 비해 내면의 ‘용기’를 끌어내는 속도가 빠를 수 있습니다. 이미 극한 상황에 처해 봤기 때문에 또 다른 범죄 상황을 겪기 전에 이를 미리 감지하는 감각도 생길 수 있고, 내 안의 ‘용기’를 끌어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잊고 싶은 축축한 기억들로 인해 위축된 삶을 살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다’, ‘난 더 멋진 사람이 될 거야’ 라고 스스로를 북돋아 주시길 바랍니다.  


‘용기’라는 단어에는 성별이 따로 없습니다. 용감한 여성, 용감한 남자, 용감한 아이, 용감한 소녀, 용감한 소년, 용감한 할머니, 용감한 할아버지.... 모두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여러분은 용감한 소녀, 용감한 딸,  용감한 엄마, 용감한 아줌마, 용감한  할머니인가요? 이 글을 읽으신 순간부터는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용기’를 소환해 보시길 권합니다. 자, 용감한 여성의 삶으로 다 함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