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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68호] 낙태죄, 그리고 비겁했던 기억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19-04-23
  • 조회586

[페미니즘, 책으로 읽기]



낙태죄, 그리고 비겁했던 기억 

― 성과재생산포럼,배틀그라운드」를 읽고



리외 (유튜브 채널 수북 운영자, 프리랜서 리서처/번역가)



“선생님, 저 OO이에요. 제가 너무 급한데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으리으리한 동네, 문을 겹겹 열고 들어가면 겨우 보안키 누르는 자동문이 나타나던 최신식 빌라형 아파트에서 주 2-3회 그 아이를 가르쳤던 게 수 년 전이었고, 그마저도 몇 달 안 되어 그 아이가 (아마도) 선생님을 마음에 들지 않아한다는 이유로 그만 나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다. 친해질 시간도 없이 휘릭 지나가버린 과외학생 한 명 정도로 여기고 있었고, 사실은 완전히 잊었었다. 저 문자를 받기 전까지는.


저 문장이 끝이었다. 돈을 빌려 달라니? 적잖이 당혹스러웠고, 짜증스러웠다. 돈을 빌려주고 되돌려 받지 못한 채 억울함과 서글픔 속에 사는 지인들 얼굴부터 떠올랐다. 번호를 지우지 않았기에 아직 그 애의 연락처가 남아 있었고, 그래서 나를 추천한 선임 과외선생이던 옛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해 그 아이가 내게 갑자기 연락하더니 돈을 빌려 달라더라, 무슨 일인지 아느냐, 너에게도 연락했냐, 물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연락을 받지는 않았으나 그 애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권했다. 


“제가... 낙태해야 될 거 같아서요”


솔직히 말하자면, 믿지 않았다. 사기를 당해서 급전이 필요하다거나, 그 애가 번호를 바꾼 뒤 낯선 이가 내게 연락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다지 만족스럽지도 않았던 옛 과외 선생에게 구태여 저렇게 다짜고짜 묻지는 않을 거라고, 무턱대고 생각했다. 전화를 걸었으나, 저쪽에서는 받지 않았다. 나는 물었다. 정말이니? 네, 진짜에요... 너무 급해요 십 만원이라도 빌려주세요 제발...


나쁘거나 힘겨운 일들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피로한 일이므로, 나는 그때 그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잊었다. 그 애를 잊었던 것처럼. 전화 연락이 끝내 닿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나는 계좌번호를 불러달라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그 애에게 했을 것이다. ‘태아를 떨어뜨려 죽인다’는 뜻의 ‘낙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모종의 불편함, 수치와 불쾌가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내가 그 순간을 겪기 전까지는.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흔한 이십대 여성으로서, 예정일이 2주 넘게 지나도록 생리가 시작되지 않자 겁에 질려 부랴부랴 사온 임신 테스트기를 쥔 손이 하얘지도록 꽉 부여잡고 변기에 앉아 어떤 표시가 나타날지 하염없이 기다리던 몇 십 분은 아찔하다, 끔찍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이전까지 해본 적 없던,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두려움이 온몸을 꽉 조여 왔다. 삶이 끝난 것 같았다.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에게 지워지는 임신과 출산의 책임감, 혹은 모성에 대한 찬양만큼이나, 낙인과 수치를 넘어 형법상의 처벌로 판단되는 낙태의 이미지는 편협한 동시에 너무도 팽배해서, 대학 시절 수업에서 숱하게 낙태 찬반 토론을 할 때에도 ‘프로-초이스’ 편에서 열심히 자료를 찾아 발표했으나 단 한 번도 실감한 적 없었다. 여성의 몸과 재생산에 관한 권리를 포괄하는 임신중절 ‘선택’을 옹호하는 쪽과, 태아의 생명과 건강이 우선이라는 쪽에 모두 일리가 있다고 어설프게 끄덕였고, 그래서 결국 나의 판단을 유보해왔다.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은 그 두 개가 전부인가, 라는 어렴풋한 추측도 곧 잊어버렸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임신은 공포라는 사실을 나는 겪고서야 알았다. 


“임신중지의 문제가 ‘여성의 선택’이라는 초점으로 협소해질수록 국가와 사회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부차화된다. 이제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더는 ‘여성의 선택’을 명분으로 책임을 방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또한 불과 몇 개의 허용 범주 안에서 우리의 삶과 존재 여부를 통제하거나 승인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292쪽)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경구피임약을 먹은 뒤 부작용을 겪은,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하게 된... 그 모든 사례들이 내 주변에 줄곧 존재해왔음에도 낙태를 ‘비규범적 섹슈얼리티,’ 즉 ‘성적으로 문란한’ 관계에 의한 결과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떨쳐내지 못했다. 피임을 잘 했어야지, 하는 비난의 시선이 내게도 있었다는 뜻이다. 


임신중지로 인한 손가락질(윤리적 책임)도, 형사처벌(법적 책임)도 여성이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긴 시간 학습된 여성을 향한 사회적 억압을 나 또한 내면화해왔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편견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과정에서, 임신과 임신중단이 내게도 잠재적 가능성이었음을 부인하려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걸 여성들은 이제 안다.


“이제까지 침묵되어 오던 여성들의 인권, 몸의 권리와 폭력에 희생되지 않을 권리가 공론장에서 큰소리로 외쳐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이미 낙태죄 폐지는 시대의 상식이 되었고, 조만간, 머지않아 법이 마련될 것이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23쪽)


피해자성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배틀그라운드>에서 성과재생산포럼의 글쓴이들은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시작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다. ‘너의 낙태를 말해 봐(#shoutyourabortion)’ 해시태그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2015년의 트위터와 그 이후 한국에서 있었던 변화들은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임신중단 이슈를 피해오던 내게도 들려왔고, 마침내 지난 4월 12일, 형법 269조1항(자기낙태죄)과 270조1항(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린다면 그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떠한 처벌의 가능성도 더는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일, 그와 동시에 누구의 몸도 선별적으로 통제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291-292)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 10대 여성, 장애 여성, 퀴어 여성... ‘여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성원들의 조합은 매우 불균질하고 서로 복잡하게 교차되기 때문에 성과 재생산의 권리도 (국가에 의해) 차등적으로 부여되었고, 그 와중 여성의 ‘정상성’은 몹시 협소하게 정의되어왔다. 마치 모든 옷이 44 사이즈로 나오는 쇼핑몰처럼. 그 사이즈에 맞지 않는 몸들은 전부 비정상적이거나 교정되어야 할 대상인 것처럼.

 

낙태죄, 그리고 여성의 재생산권이 이만큼 사회적으로, 즉 ‘양지에서’ 논의될 수 있을 줄 몰랐다. 나는 ‘음지’의 공간으로 끊임없이 나의 몸을 내몰았고 다른 여성들의 경험들도 내몰았기 때문이다. 쉬쉬하고, 뒤에서 수군거리고, 비난이나 연민의 시선으로 임신중단 당사자들을 바라보거나, 몇 년 전의 내가 그 애에게 그랬듯, 무시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수행하기보다는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취약하게 하는 데 기여하면서 개인의 권리와 경쟁해 온 국가에 대항하는 싸움을 시작하고자 한다.” (21쪽)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렵다. 그중에서도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 어렵고, 그 중에서도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몸의 기억이 마치 ‘배틀그라운드’처럼, 개인의 자유로운 기억이기보다 국가와 사회의 통제와 억압 속에 교묘히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이야기하겠다고 결심하는 여성들에 의해 4월 12일까지 도달했다. 환호성을 지르기 전에 난 어땠지, 난 뭘 했지,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던 그날까지.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분명 유의미하지만, 여성인권에 있어서는 갈 길이 멀다, 여기에서 다시 시작이다, 라고 성과재생산포럼의 글쓴이들은 말할 것이다. 더 많은 논의들이 구석에서, 개인적으로, 어두운 곳에서가 아니라 공적인 공간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그렇게 될 것이다. 


낙태죄가 “단지 여성의 생애 한 대목에서 일어나는 임신중단이라는 행위만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시민 사이의 위계 재생산과 정상적인 삶의 규정을 둘러싼 싸움터였다”(19)는 지점을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도, 언어화하지도 못했다.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를 왜 여성이 지닐 수 없지? 라는 의문을 지닌 분들, 조금씩 이 이슈에 대해 들여다보려는 나와 유사한 분들에게 <배틀그라운드>를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다시 그 애를 생각한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그날로부터 다시 수년이 지난 지금 그 애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성인들에게 절박하게 도움을 구했을 그 애가 지금은 어디에서든 부디 건강하게 지내기를. 여전히 비겁하게도, 내겐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